
통장을 셋으로 나눠 몇 달 굴리다 보면 한 가지가 걸리기 시작합니다. 저축 통장에 돈이 쌓이는데 그 안에 성격이 다른 돈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 가려고 모으는 돈과 가전이 고장 났을 때 쓸 돈과 그냥 불려두는 돈이 한 숫자로 보입니다.
혼자 사는 집에서는 이 계산을 물어볼 데가 없습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 하나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 숫자가 여러 목적을 한꺼번에 담고 있으면 판단이 자꾸 뒤로 밀립니다.
그러면 잔액을 봐도 판단이 안 섭니다. 300만 원이 있는데 이게 써도 되는 돈인지 아닌지를 그때그때 기억으로 계산해야 하고, 기억은 대체로 후한 쪽으로 기웁니다.
이 글은 네 번째 칸을 언제, 어떻게 만드는지를 다룹니다. 통장을 처음 나누는 방법과 자동이체 거는 순서는 따로 정리해 뒀습니다.
목차
세 개로 부족해지는 순간

세 개 구조는 쓸 돈과 모을 돈을 가르는 데까지가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첫 달부터 달성되는데, 몇 달 지나면 모을 돈 안쪽이 다시 섞입니다.
세 개 구조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셋으로 몇 년을 굴려도 충분한데, 모으는 돈에 기한이 붙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한이 있는 돈은 언제까지 얼마가 있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어서, 다른 돈과 섞이면 그 계산이 맞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신호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저축 통장 잔액을 보고 이게 얼마짜리 돈인지 바로 말할 수 없으면 그때가 한 칸이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반대로 잔액을 보고 목적이 하나로 떠오르면 아직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저축 통장에서 자꾸 꺼내 쓰게 되는 경우입니다. 금액이 크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옮기는데, 목적이 정해진 돈이 섞여 있으면 정작 그 목적이 왔을 때 금액이 모자랍니다. 꺼낼 때는 어느 몫에서 꺼내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혼자 사는 경우에는 이 시점이 조금 일찍 옵니다. 가전 교체나 이사처럼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목돈이 예고 없이 오기 때문입니다. 누구와 나눠 낼 수 없으니 그만큼 목적이 있는 돈을 미리 떼어두게 됩니다.
목적이 다른 돈은 왜 섞이면 안 되나

돈은 금액만으로는 성격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언제 쓸 돈인지가 성격을 정합니다. 반년 뒤에 쓸 돈과 3년 뒤에 쓸 돈은 같은 100만 원이어도 다뤄야 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섞여 있으면 두 가지가 동시에 망가집니다. 가까운 시점에 쓸 돈을 길게 묶어버려 필요할 때 깨게 되고, 반대로 오래 둬도 되는 돈을 꺼내기 쉬운 자리에 둬서 야금야금 쓰게 됩니다.
목적이 있는 돈을 길게 묶어두면 중도에 깨게 되고, 깨면 이자를 거의 못 받습니다. 반대로 3년 뒤에 쓸 돈을 수시입출금 통장에 두면 그동안 붙을 이자를 통째로 버리는 셈입니다. 둘 다 금액이 아니라 자리가 잘못된 경우입니다.
맨 아랫줄은 애초에 저축 통장에서 다시 옮겨가는 돈입니다. 연금이나 세제 혜택이 붙는 계좌로 넘기는 쪽이라 이 글에서 말하는 칸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표에서 보시면 칸을 나누는 기준이 금액이 아니라 시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 번째 칸은 대개 맨 윗줄을 떼어내는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네 번째 칸에 무엇을 담나

네 번째 칸은 목적이 뚜렷하고 시점이 가까운 돈을 담습니다. 이름을 붙일 수 있어야 하고, 얼마가 필요한지 대략이라도 나와 있어야 합니다.
흔한 것은 이사 관련 비용입니다. 보증금은 별도로 치더라도 중개 수수료, 이삿짐, 입주 청소, 새로 사야 하는 물건까지 한 번에 나갑니다. 미리 칸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이사 때 저축 통장을 통째로 헐게 됩니다.
가전 교체도 같은 성격입니다. 냉장고나 세탁기는 고장 나는 시점을 고를 수 없고, 혼자 살면 며칠 없이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장 나기 전에 이 칸을 만들어두는 편이 낫습니다.
건강 쪽도 칸을 만들 만합니다. 검진에서 재검이 나오거나 치과 치료가 길어지면 한 번에 나가는 금액이 적지 않은데, 건강보험이 닿지 않는 항목일수록 예고 없이 옵니다.
여행이나 자기계발처럼 안 써도 되지만 쓰고 싶은 돈도 여기에 담습니다. 이 칸이 따로 있으면 쓸 때 죄책감이 줄고, 반대로 이 칸이 빌 때 멈추게 됩니다. 한도가 눈에 보이는 게 이 칸의 쓸모입니다.
비상금은 이 칸에 넣지 않습니다
비상금은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은 돈이라 성격이 다릅니다. 목적 칸과 섞어두면 여행 자금을 병원비로 쓰거나 그 반대가 되고, 그러면 둘 다 제 역할을 못 합니다. 비상금은 따로 둡니다.칸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

실제로 통장을 하나 더 여는 방법과, 한 통장 안에서 금액을 갈라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목적이 갈리면 됩니다.
통장을 더 여는 쪽은 경계가 확실합니다. 잔액이 곧 그 목적의 남은 돈이라 헷갈릴 일이 없는데, 대신 앱에 계좌가 늘어납니다.
요즘은 한 통장 안에서 금액을 여러 칸으로 갈라 보여주는 기능을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계좌를 늘리지 않아도 되는 대신 갈라둔 금액을 마음먹으면 바로 합칠 수 있어서 경계가 무릅니다. 의지에 기대는 구조라 오래 못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 한 칸을 늘릴 때는 통장을 실제로 여는 쪽을 권합니다. 경계가 흐릿하면 칸을 나눈 효과가 잘 느껴지지 않고, 효과가 안 보이면 두세 달 안에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규칙은 같습니다. 이 칸에서 돈을 꺼낼 때는 목적에 맞을 때만 꺼냅니다. 목적이 아닌데 꺼내기 시작하면 칸을 나눈 의미가 사라지고, 그때부터는 통장이 하나인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월급날 이체 순서는 어떻게 바뀌나

칸이 하나 늘면 월급날 이체도 하나 늘어납니다. 순서는 바뀌지 않고 자리만 하나 끼어듭니다.
목적 칸 적립액은 저축액보다 작게 잡는 편이 좋습니다. 목적 칸이 커지면 실제 저축이 줄어드는데, 쓸 예정인 돈이 늘어난 것을 모은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적립액을 정할 때는 목표 금액을 남은 개월 수로 나눠보면 됩니다. 나온 금액이 부담스러우면 금액을 줄이기보다 목표 시점을 뒤로 미루는 쪽이 계산이 깔끔합니다. 금액을 줄이면 언제 채워지는지가 흐려집니다.
목표 금액이 채워지면 그 칸의 자동이체는 멈춥니다. 멈춘 금액은 저축 통장으로 돌리면 되는데, 이 단계를 안 해두면 목적 칸에 필요 이상으로 쌓입니다.
늘리지 않는 편이 나은 경우

칸을 늘리는 게 늘 정답은 아닙니다. 세 개도 아직 자리를 안 잡았다면 네 번째는 이릅니다. 저축 통장을 아직 헐고 있는 상태에서 칸만 늘리면 헐 자리가 하나 더 생길 뿐입니다.
소득이 불규칙한 경우도 서두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들어오는 금액이 달마다 다르면 목적 칸까지 챙기다가 생활비가 먼저 비는데, 그러면 목적 칸을 헐게 되고 결국 칸이 무너집니다.
목적이 막연할 때도 늘리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언젠가 쓸 돈은 목적이 아니라 이름이 없는 돈입니다. 이름을 붙일 수 없으면 그냥 저축 통장에 두는 편이 낫습니다.
정리하면서 가장 자주 본 실패가 여기 있었습니다. 구조를 더 정교하게 만들면 더 모일 것 같아서 칸부터 늘리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모이는 양을 정하는 건 칸의 개수가 아니라 월급날 먼저 빼는 금액입니다. 칸은 이미 빼둔 돈을 헷갈리지 않게 갈라두는 장치입니다.
다섯 개, 여섯 개로 늘리는 것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목적이 뚜렷하고 시점이 정해져 있으면 늘리고, 그렇지 않으면 두는 쪽입니다.
한 해 지나면 다시 보는 자리

목적 칸은 한 번 만들고 끝나지 않습니다. 목적이 끝나면 칸도 같이 정리해야 하는데, 이 단계를 빠뜨리면 빈 칸이 남아 구조만 복잡해집니다.
정리 자체는 몇 분이면 끝납니다. 미루게 되는 이유는 그 칸에 돈이 조금 남아 있어서인데, 남은 금액은 저축 통장으로 보내면 그만입니다.
이사를 마쳤으면 이사 칸을 닫고, 가전을 바꿨으면 그 칸을 비웁니다. 남은 금액은 저축 통장으로 보내거나 다음 목적으로 이름을 바꿔 다시 씁니다.
반대로 목적이 커져서 한 칸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사처럼 항목이 여러 개인 목적이 그런데, 이때는 칸을 또 나누기보다 목표 금액을 올려 잡는 쪽이 단순합니다.
한 해에 한 번, 연말정산을 하는 시기쯤 같이 보시면 잊지 않습니다. 그때 목적 칸이 몇 개인지, 각 칸이 실제로 쓰였는지만 확인하면 충분합니다. 쓰이지 않은 칸이 두 해 연속 남아 있으면 그 칸은 애초에 목적이 아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늘 하나만 한다면 저축 통장 잔액 옆에 용도를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용도가 한 줄이면 아직 셋으로 충분하고, 두 줄 이상이면 칸을 나눌 때가 된 것입니다.
칸을 늘린다고 돈이 더 모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목적이 있는 돈과 없는 돈이 갈리면, 쓸 때 덜 망설이고 남길 때 덜 헐게 됩니다.
핵심 포인트
✓ 저축 통장 잔액의 용도를 한 줄로 말할 수 없으면 칸을 나눌 때입니다
✓ 칸을 가르는 기준은 금액이 아니라 언제 쓸 돈인지입니다
✓ 비상금은 목적 칸과 섞지 않습니다. 성격이 다른 돈입니다
✓ 목적이 끝나면 칸도 정리합니다. 빈 칸이 남으면 구조만 복잡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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